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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Harper
2011-06-01 [매경 이코노미]

한국을 테마로 작업해 보고 싶어요

2011-06-01 [매경 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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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생/ 런던 왕립미술대/ 골드스미스칼리지 강사(Lecturer)/ 2011년 래티튜드 어워드 수상 “영화 솔라리스 보셨나요?”

더페이지갤러리의 새하얀 전시 공간에 독특한 문양의 원구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백인 남자가 다가와 던진 질문이다. 원구에 새겨진 그림은 어떻게 보면 숲 같은데 그 속에 사람의 뼛조각이 새겨진 듯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때 보면 세포분열이 일어나는 듯하다. 갑자기 웬 영화 얘기인가 싶다.

자신이 이 작품을 만든 작가라는 소개에 눈이 번쩍 뜨인다. 앤디 하퍼(Andy Harper·40). 영국 출신으로 런던 왕립미술대(Royal Academy of Art)를 졸업하고 현재 미술 명문인 골드스미스칼리지의 강사(Lecturer). 그의 이력만 놓고 보면 소위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과 같은 작품세계를 지닐 듯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원시적이고 자연친화적이었다. 작품 소재 중 수풀과 알곡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 그는 왜 ‘솔라리스’를 화두로 던졌을까?

“솔라리스는 행성 이름인데요. 영화에 묘사된 솔라리스는 황폐하지만 점차 지구처럼 무성해질 여지를 갖춘 곳이에요. 제 작품 역시 두세 겹(layer)을 덧칠하면서 만들어지는데요. 솔라리스처럼 모든 생명의 근원은 황폐한 것이 아니라 생명이 움트기 위한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거지요. 그래서 밑그림 작업에도 이런 철학을 담는답니다.”

설명을 듣고 작품을 자세히 보니 밑그림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떤 작품은 샤갈의 그림이 배경이 되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건축의 도면같이 기하학적인 소재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덧칠을 할까.

“종의 다양성을 얘기했던 다윈처럼 작품 역시 평면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 진화란 가치를 담을 수 있거든요. 이때 진화란 단순히 풀이 자라고 나무가 크는 것에 그치지 않아요. 거기엔 사람이 살고 문화가 만들어지고 철학이 꽃피죠. 그런 걸 제 그림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답니다.”

그래서인지 앤디 하퍼의 어떤 작품은 뼈 등이 무성한 식물 이미지에 직간접적으로 겹쳐 보인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품은 18세기 작가 윌리엄 블레이크를 연상케 한다. 블레이크는 초상화나 풍경화처럼 단지 자연에 대한 외관을 복사하는 회화를 지양하고 묵상 중에 상상하는 신비의 세계를 그려 호평을 받았다. 앤디 하퍼 역시 이런 평가에 수긍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합리적인 증명, 가정을 넘어 초자연, 초과학적인 접근으로 주목을 받았어요. 저는 여기에 인간의 내적 감성과 열정, 사랑 등을 작품에 넣는 작업으로 ‘진화’시키고 있답니다.”

이런 그의 작품은 최근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에 더페이지갤러리에 소개된 그의 원구 작품은 영국의 래티튜드 어워드를 수상했다. 참고로 래티튜드 어워드는 영국 거대 문화 페스티벌인 래티튜드 페스티벌의 미술 부문 상으로 새로운 미술문화를 창조하는 작가들에게 수여한다. 더불어 영국 정부, 스위스의 피고지 컬렉션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처음인데 국립중앙박물관, 신사동 가로수길 등을 보면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곳이란 걸 실감해요. 제 밑그림 소재로 한국 작가 작품을 해보면 어떨까란 묘한 설렘 같은 걸 느꼈어요.”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08호(11.06.01일자) 기사입니다]